[북 리뷰] ‘재주도 좋아 제주로 은퇴하다니 ’ (페스트북, 2023)

허지선(북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허지선(북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은퇴라는 단어는 직장인들이라면 특히나 듣고 싶지 않은 단어들 중 하나일 정도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마련인 단어인데 이 달갑지 않은 은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을 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재주도 좋아 제주로 은퇴하다니>는 평생동안 다닐 줄 알았던 대기업 회사를 퇴직을 하게 되면서 정든 회사, 정든 집, , 가구 등을 모두 정리한 뒤 여행용 캐리어에 들어갈 옷보따리만 달랑 가지고 서귀포 성산포에서 시작하여 버스를 타고 걸으며 석달동안 제주도 한바퀴를 돌며 보고, 느끼고, 듣고 한 제주살이 경험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유머러스 하게 풀어쓴 책이다.

이삿짐 포장을 끝냈다. 캐리어 두 개 배낭 두 개가 전부다. 서부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반납을 했고 혹시 놓고 가는 게 없는지 한번 둘러본다. 원룸이라 둘러보는데 삼십초도 안 걸리네. 삶은 역시 간결한 게 최고야. 무겁지 않은 삶, 살아보니 좋네. 오늘 포장이사는 282, 440번으로 한다. 우선 282번으로 제주터미널까지 간다. 버스가 제주를 가로질러 간다. 창밖 풍경이 좋다. 멀리 바다가 보이네. 한 시간만에 제주터미널에 도착했다. 440번으로 환승, 고불고불한 골목을 지난다. 오호, 동네가 감성이 있네. 좋은 선택이었어.”

P-106 중에서.

아무리 짐을 가볍게 하고 왔어도 살다 보면 늘어나는 게 살림살이와 짐인데 버스를 타고 이동 가능한 간결한 짐을 제주살이를 하며 유지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특히나 저자는 은퇴를 하기 전까지는 대기업 직원이었으니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월급도 많았을 것이고 소비와 짐을 늘리는 삶에 익숙했을 텐데 다 버리고 캐리어 하나 들고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용기가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을 가방에 넣고 무엇을 가방에 빼야 할지 고민 안 해도 되는 캐리어 두 개, 배낭 두 개로 정리가 되는 저자의 짐들이라니, 무겁지 않고 가벼운 삶을 실천해내고 있는 저자의 실천력과 절제력이 부러워졌다.

사람에 따라 제주도를 즐기는 100가지 방법이 있다고 치면 그 가운데 하나가 걷기일 것이다. 다행히 제주에는 올레길이라는 명품 걷기 코스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후닥닥 빨리 걸으면 한 달이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날씨가 뒷받침을 잘 해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제주도 지도를 놓고 보면 한라산이나 내륙에 있는 오름과 숲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광코스가 해안에 있다. 이것이 제주를 걸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감동시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걷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원초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좋은 잠, 건강한 음식과 함께 말이다. 건강하게 먹고 많이 먹고 푹 자는 인생이 최고다. 뭐가 더 있겠는가.”

P-132~133 중에서.

제주도를 여행한다고 하면 흔히들 렌터카로 떠나는 제주여행을 떠올린다. 마치 짜여진 대본에 맞춰진 루트로 수박겉핡기식으로 돌아보고 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속도대로 걸으며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여행을 하는 제주도를 즐기며 이해하고 있었다. 단순히 유명한 길을 걷는 목표지향형 걷기 여행이 아닌, 제주도 완주를 위해 이동을 한 숙소 근처의 도서관에서 독서하는 날과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날을 정해 일상생활을 하며 걷기를 했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이든 살다 보면 늘 일정한 루틴, 일정한 생활패턴으로 가는 곳만 가고 보던 것도 보게 되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처럼 여유롭게 길을 걸으며 사소한 것에 감탄할 수 있는 시한부 제주살이를 하는 관점으로 바꿔보려고 한다면 조금은 더 다르게 일상의 풍경이 살고 있는 제주의 속살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용 트렁크 2개로 은퇴 후 시작하게 된 제주도 살이를 하며 진짜 제주도의 내면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말하는 저자의 제주도살이를 함께 들어보면 어떨까.

재주도 좋아 제주로 은퇴하다니/박경식/페스트북/15,000원/152쪽/2023년 05월 22일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