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진의 문화이야기

서귀포공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주위 사람들에게 미술관을 자주 가는지 물어보면 유명한 그림은 너무 뻔해서, 현대미술의 작품은 뭘 봐야 할지 몰라서 미술관은 자주 이용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감상하는 즉시 좌석에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연, 영화와 달리 형태와 색, 질감으로 구성된 미술작품으로부터 직관적인 감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어렵게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명작을 보면서도 ..모나리자구나.’ ‘책에서 봤던 OOO 작품이군처럼 기대했던 감동에 못 미치는 경험으로 씁쓸하게 미술관을 나올 때처럼 말이다. 아마도 시각예술이 관람자의 경험을 상기시키기에는 스토리나 플롯이 생성되기에는 너무 단순한 요소로 구성돼서일까? 하지만 이런 단순한 요소가 어쩌면 상상 일으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일차적으로 보이는 색과 조형, 그림이 말하는 혹은 작가가 말하는 주제나 소재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경험이 있는지 연관 지어 본다면 끊임없는 이야기가 되고 질문이 된다. 질문은 호기심이 되고 호기심은 다른 미술작품이나 연관된 다른 예술 장르와도 연결된다. 나는 이런 경험을 주제로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 일상에서 벗어나 환경을 바꾸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환경을 바꾸는데 여행만 한 게 없지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그래서 내가 자주 활용하는 방법은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 것이다. 활동의 제한을 받지 않고 새로운 환경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머릿속으로 계속 되이던 단어들이 영화 속의 대사와 연관되고 SF소설에서 실현이 될 때도 있었다. 같은 질문의 답을 여러 명에게 듣는 경험이다. 나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다시 전시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는 이렇듯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기도 했고 끝을 맺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 중 가장 재미있는 반복이다.

최근 나는 스마트폰과 가전기기를 연결했다. ‘건조기가 돌아갑니다. 코스를 선택합니다. ’ 말을 걸어 온다. ‘애완동물이 없는 나는 미래에 가전과 어울려 살겠구나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 몇 년 전 융복합 전시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는 아르코미술관의 2021년 전시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 전시를 떠올렸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 작품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시각적,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이건 대체 무슨 말일까? 비인간과 경계를 허문다고 한다면 작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전시에 참여했던 소설가 김초엽은 인간과 자연, 기술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몇 년 뒤 SF소설 <파견자>들을 발표한다. 그녀의 작품은 기술 진보와 환경 보호 사이의 대립을 벗어나, 서로가 하나의 유기적 조합으로 공생할 수밖에 없는 선순환적 미래를 상정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미래의 가능성을 다른 각도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나는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공생하는 의미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과 함께 전시를 만드는 날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전시를 보고도 인간과 비인간으로 나눈 이유 기술과 환경이라는 개념은 왜 다시 생각해야 하지 궁금했었고 그 호기심은 하나의 소설 하나의 영화에 머물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씨앗을 뿌렸다. 이렇게 아이디어는 왔다가 다른 생각을 붙잡기도 한다.

미술이란 캔버스, 화선지, 조각과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시각적인 예술이지만 작가의 다양한 경험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들이 선택한 단어, , 재료, 주제를 다시 한번 호기심이 어린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이야기 나의 아이디어가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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