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의 서귀포여성의 삶의 기록, 길에서 만나다(1)

 

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7월 여름 풍경
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7월 여름 풍경
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 초여름 풍경
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 초여름 풍경
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 2월
영실에서 윗세오름 가는 길 2월

 

제주섬 남쪽 서귀포여성들의 삶의 이야기가 깃든 공간을 찾아 떠나 보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제주섬 여성들은 섬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조선 인조 7년(1629)부터 제주여성은 출륙금지를 당해 이후 약 250여년 동안 섬에 갇혀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250여년 동안에 공식적으로 제주섬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여성은 김만덕 한사람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그가 전 재산을 던져 백성을 구휼한 포상으로 한양여행을 청했을까? 왕명에 의해 그의 소원인 ‘육지 나들이’가 이뤄졌던 것은 정조 18년(1794)이었다. 제주섬 여성들이 섬을 떠나지 못했던 만큼 제주여성들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들의 공간을 잘 활용하고 새로운 공간확장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다. 제주의 중산간 곶자왈, 해안 바다밭까지 여성들이 누비지 않은 곳은 없었다. 고종 13년(1876)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어 개항이 이뤄지면서 출륙금지가 사라졌을 때 제주여성들은 배움, 직업을 위해 삶의 터전을 확장시켰다. 그래서 육지는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 출가 물질을 통해 날개를 펼치고 싶었을지 모른다. 

#서귀포 여성의 삶이 깃든 공간과 이야기

‘제주여성 삶의 기록, 길에서 만나다’ 여정은 지난해 3월 제주시정 홍보지 ‘열린 제주시’를 통해서 시작됐다. 이를 통해 제주시 지역 여성문화유적, 혹은 여성들의 삶이 투영된 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귀포시 지역도 발자국을 놓고 어딘가에 소개하고 싶은 욕망이 샘솟던 즈음 서귀포신문과의 인연이 닿았다. 지면을 내어준 서귀포신문에 감사를 전한다. 

사실 제주섬 어디든 발걸음을 옮겨놓기만 해도 그곳이 여행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섬 가장 높은 곳, 한라산에 올라도 그곳에 여신의 이야기가 살아있고, 제주바다 어디든 여인의 전설을 품지 않는 곳이 없으니 말이다. 특히 성산에서 대정까지 칠십리에 이르는 서귀포시 지역에는 여성들의 삶의 기록과 전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들이 산재하고 있다. 

일만팔천신들이 살았다는 제주. 설문대여신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한라산 영실부터 어부였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돌이 되었다는 할망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외돌개’, 여신의 정기가 살아있는 물 ‘거슨새미’도 그렇고, 신화가 살아있는 곳들도 적지 않다. ‘오름나그네’저자 김종철이 ‘날개 편 능선 사뿐한 학춤’이라고 표현한 대륜동 각시바위는 태기가 없어 고민하던 여인의 아픈 사연을 품은 설화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문동 천제연은 옥황상제의 칠선녀가 밤중에 물이 맑고 조용한 연못에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기도 하다. 산방산과 해안의 경치만으로도 아름다운 지형을 자랑하는 산방산 남서쪽 기슭에있는 산방굴사도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에는 천정암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있는데 이 물은 이곳에 살던 여신 산방덕이가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전설도 있다. 제주도의 삼성신화의 주인공인 고양부 삼신인과 벽랑국 삼공주가 혼인했다는 연못이 있는 마을 온평리도 여성유적으로 손꼽힐 수 있다. 이뿐인가 마을 곳곳에 있는 할망당, 물통, 연자매, 신앙터 등도 찾아가보고 싶다.  
독자와 함께 서귀포 곳곳에 있는 여성들의 삶의 흔적, 이야기가 스민 공간을 찾아보고 걸어보는 동안 여성들의 삶의 흔적에 천천히 마음과 발길을 내어 주시길.
 
#설문대 여성신화가 살아있는 한라산 영실
설문대 여성신화가 스민 영실은 한번 다녀간 사람이라면 모두 사랑하게 되는 곳이다. 백록담에 올라 나라의 제를 모실때는 영실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알려진다. 오백나한, 오백장군 등으로 불려지는 영실은 신령스러움 그대로다. 서귀포시 하원동 산 1번지 영실에서 출발해 윗세오름까지 이어지는 등반로는 필자가 사랑하는 코스다.
영실기암과 오백장군을 이루는 한라산조면암을 영실조면암이라고도 부른다. 영실조면암은 영실휴게소에서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서 500m지점 오른쪽 계곡에 분포한다. 약 250m 절벽을 이루며, 남북이 약 1.5km, 동서가 약 1km인 타원형의 형태이다. 동쪽은 높은 절벽을 이루며, 남서쪽은 낮은 지형으로 열려져 있다.

이 등산로를 가다보면 오백장군을 상징하는 영실기암이 장관인데 이곳에는 설문대할망과 아들의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설문대할망은 거인의 형상으로 한라산 백록담을 베개 삼아 누우면 발이 관탈섬까지 닿았다고 한다. 한라산 정상에서부터 관탈섬까지의 거리가 40여㎞에 달하니 얼마나 거대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거대한 설문대할망이 치맛자락에 모래를 담아 흙으로 만든 게 제주도고, 한라산 역시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치맛자락에 뚫린 구멍으로 흙이 새어 나와 만들어진 것들이 360여 개의 오름이라고 하니 얼마나 웅장하고 거대함이 제주지역의 신화와 전설을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라산 정상이 뾰족해 정상을 떼어 버렸더니 지금의 움푹 패여 있는 형태의 백록담이 됐고, 떼어진 정상부를 던져버렸더니 만들어진 게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산방산이라는 스토리도 신화에 담겨 있다.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 ‘영실’에는 기암절벽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나한 또는 오백장군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옥황상제의 딸이었던 설문대 할망은 천상세계에서 내려와 아들 오백 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어느 해 몹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오백 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정말 죽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막냇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됐다. 막내는 어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죽을 먹어치운 형제들과는 못살겠다면서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 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그리며 한없이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도 아니고 지질학적으로 화산섬의 탄생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제주 사람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를 통해 진취적이고 거대한 여신의 힘을 믿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설문대할망 신화는 마을마다 간직한 곳이 적지 않다. 특별한 지형을 모두 설문대할망과 연결지어 이야기 소재를 삼는 제주사람은 어떤 형상을 보든 설문대할망이 창조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언제가도 좋은 한라산 탐방코스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가는 등반로는 언제가도 좋은 코스이다. 뜻밖의 풍경을 만날때도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새봄이 온 것으로 알고 떠났던 3월에 눈꽃이 가득했던 설국을 만나기도 한다. 구름이 내려앉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가 느닷없이 구름과 안개가 걷히면서 오백장군이 한눈에 들어오는 날도 있다. 비가 온 다음에는 영실기암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만나 황홀감을 느끼게 될때 도 있다. 영실을 찾아 설문대할망의 기운을 얻었으니 서귀포의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과 유적을 힘내서 찾아나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사진 이현숙 언론인 및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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